이시생가는“이청”이라고속칭하였다. 후에<편행당집>사건으로인해이씨는마음이불안하여동치연간, 이씨자손은사당은“이안당”이라고개명하였다. 청나라말기, 평탄이사람들한테아주인기를받았다. (평화 : 민간문예의한가지로, 한사람이그지방의사투리로고사(古史) 따위를이야기하는것인데창(唱)은하지않음; 탄사:현악기에맞추어노래하고이야기하는일종의민간문예). 한창흥성할때에는삼리장거리에서장(옛날, 사람을모아놓고만담·야담·재담을들려주는장소)이 10여개나달하며”이안당”을“아안서장”으로개발하여 1984년에야문을닫았다. 리리사람들마음속“이안서장”은“이청”이다.
